2007. 08. 14일 (화)

제가 어쩌다보니 신문에 나왔어요,, 흐흐,,,
인터넷에만 났는지 페이퍼에도 나왔는진 몰라도 ,,,

암튼 왼쪽이 저에요 흐,,,,,

고향이 북에 있으신 김영 할아버지신데,,, 아들이 70넘었대요,,,

통일 되어야 합니다!!!!

기사 출처 :
http://isplus.joins.com/sports/generals/200708/15/200708150946282001010500000105010001050101.html


토토 사회봉사단, 따뜻한 이웃사랑 실천
임직원들로 구성된 토토 사회봉사단 지난 14일 '노인 가족 만들기' 봉사활동 실시
매달 정기적으로 방문…어르신들께 말벗 해드리며 뜻 깊은 시간 보내
[2007-08-15 09:4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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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토토 직원들이 독거노인 및 장애인 가정을 방문해 따뜻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왔다.

스포츠토토(www.sportstoto.co.kr)와 스포츠토토온라인㈜ (www.betman.co.kr) 임직원들로 구성된 토토 사회봉사단은 지난 14일 오후 강남구 수서동의 명화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아 '노인 가족 만들기'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노인 가족 만들기' 활동은 정서적 외로움을 호소하는 독거노인 및 장애인 가정을 방문해 말벗, 안마, 산책 등을 함으로써 일일 가족이 되어주는 활동이다. 토토 사회봉사단은 지난 2006년부터 지정된 다섯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이날 봉사 단원들은 어르신들과 제철 과일과 음료 등을 함께 나누며 지난 한달간의 안부를 전했다. 방문 후에는 담당 복지사에게 노인들의 필요 사항을 전달하여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한 봉사단원은 "항상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친 손주처럼 대해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라며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앞으로도 빠짐없이 방문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토토 사회봉사단은 이 활동 외에도 지적 발달 장애 어린이들과 스포츠 활동, 미혼모 영아 목욕봉사 등을 매달 변함없이 실천하고 있다. 한편 지난 10일에는 서울 전농동의 밥퍼나눔운동 본부를 방문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1000여 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등 무료 배식 활동을 도왔다.
[2007.08.15 09:48 수정]
Posted by 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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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퍼 운동본부에서 자원봉사 할때의사진,,,, 오른쪽이 나>>



자원봉사를 할때마다,, 이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경험에 의해서 경험을 해나가는 것같다.

어려움을 아는 사람이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게되는 것 같다.

종종, 그렇지 않음에도 선행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세상은 따뜻한 곳인가보다, ㅋㅋ

여러분도 "한번"이라도 해보는게 어떨까요??

한번이 십수명이면,,,,, ^^*


그럼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1006개의 동전



예상은 하고 갔지만 그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흠짓 놀라고 말았다.

얼굴 한쪽은 화상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두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 코가 있던 자리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순간 할말을 잃고 있다가 내가 온 이유를 생각해내곤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회 복지과에서 나왔는데요"

"너무 죄송해요.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해서요. 어서 들어오세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밥상 하나와 장롱 뿐인 방에서 훅하고 이상한 냄새가 끼쳐왔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어린 딸에게 부엌에 있는 음료수를 내어 오라고 시킨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계세요. 얼굴은 언제 다치셨습니까?"

그 한마디에 그녀의 과거가 줄줄이 읊어나오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집에 불이나 다른 식구는 죽고 아버지와 저만 살아 남았어요"

그때 생긴 화상으로 온 몸이 흉하게 일그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사건이후로 아버지는 허구헌날 술만 드셨고 절 때렸어요.

아버지 얼굴도 거의 저와 같이 흉터투성이였죠.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집을 뛰쳐 나왔어요."

그러나 막상 집을 나오고 하니 아주머니는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다고 한다.

고아원에 가기만 하면 아이들이 놀리고 때려서 길거리에서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부랑자를 보호하는 시설을 알게 되었고, 거기서 몇년간을 지낼 수 있었다.

"남편을 거기서 만났어요. 이 몸으로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었느냐고요?

남편은 앞을 못 보는 시각 장애인이었죠"

그와 함께 살 때 지금의 딸도 낳고, 그때가 자기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행복도 정말 잠시, 남편은 딸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후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은 세상을 등지고 말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전철역에서 구걸하는 일뿐.

말하는 게 힘들었는지 그녀는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느 의사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무료로 성형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러 번의 수술로도 그녀의 얼굴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이 무슨 죄가 있나요. 원래 이런 얼굴, 얼마나 달라지겠어요"

수술만 하면 얼굴이 좋아져 웬만한 일자리는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는 달리 몸과 마음에 상처만 입고 절망에 빠지고 말았단다.

부엌을 둘러보니 라면 하나 쌀 한톨 있지 않았다.

상담을 마치고,

"쌀은 바로 올라올 거구요. 보조금도 나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며 막 일어서려고 하는데 그녀가 장롱 깊은데서 뭔가를 꺼내 내 손에 주는게 아닌가?

"이게 뭐예요?"

검은 비닐봉지에 들어서 짤그랑 짤그랑 소리가 나는 것이 무슨 쇳덩이같기도 하였다.

봉지를 풀어보니 그 속안에는 100원짜리 동전이 하나 가득 들어 있는게 아닌가?

어리둥절해 있는 내게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하는 것이었다.

"혼자 약속한 게 있어요. 구걸하면서 1000원짜리가 들어오면 생활비로 쓰고,

500원짜리가 들어오면 자꾸 시력을 잃어가는 딸아이 수술비로 저축하고,

그리고 100원짜리가 들어오면 나보다 더 어려운 노인분들을 위해 드리기로요. 좋은 데 꼭 써주세요"

내가 꼭 가져가야 마음이 편하다는 그녀의 말을 뒤로 하고 집에 돌아와서 세어보니 모두 1006개의 동전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그 돈을 세는 동안 내 열손가락은 모두 더러워졌지만, 감히 그 거룩한 더러움을 씻어내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한 밤을 뜬눈으로 지새고 말았다.

Posted by 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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